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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6.26 일기글

무엇이 그리운지도 모르게 그리움에 미쳐버릴것 같은 나날의 연속입니다 고향에 계신 홀어머니도 그립고 아무도 없는 자취방 쳐진 어깨 쓸어줄 연인도 그립습니다. 재 작년에 죽어버린 바보같은 아버지의 무덤도 그립고 원수처럼 만나면 으르렁거리는 큰 누이도 그립고 며칠 전 돈벌이에 손이 찢어져 열 바늘을 꼬메버린 둘째 누이도 그립고 멍청하게 일만하다 시집가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막내누이도 그립고 아무도 기억 못해주는 생일을 기억해준 군발이 둘도없는 친구 은걸이도 그립습니다 그리워서 미쳐버릴 것 만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술을 마셨습니다 그래서 후배 앞에서 횡설수설 했더니 몰 상식한 후배가 보기싫다고 나가버렸습니다. 나는 우리 아버지를 닮아서 멍청합니다 그래서 아직 나의 고민 들어줄 연인 하나 없습니다 나는 정말로 멍청한가 봅니다. 나를 그리움에 미치게하는 이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그리운 것은 무엇일까요? 욕탕을 갔다온 6월 26일 밤, 자기 아버지를 닮아 멍청한 용덕이가 1992.6.26 김용덕

1989.6.13 사문일지

사문 (*사월문학반)에서의 시한부적인 시간을 알차게 채우기 위해서 난 얼마만큼 성실했고 또 얼마만큼 발버둥을 쳤는가 삼개월하고도 삼십일이 더 지나간 시간 속에서 난 무엇을 느꼈으며 무엇을 알았는가 일년 전과 달라진 것이라곤 없는 고민과 그 때 이상으로 질적인 변화라곤 없는 생활 움직여야 한다는 단 하나의 명제만 품고 살아온 지금에 서서 생각해 볼때 난 어디로 얼마만큼 움직였는가 손톱이 달아 빠지도록 벽을 긁고 또 긁자 발 뒷굼치가 닳아서 해지도록 뛰자 긁고 긁고 뛰고 또 뛰면 어둠을 밀치고 해가 뜨는 것처럼 무언가가 삶이라는 나의 손안에 잡힐 거야 불성실하고 무절제한 너 너 죽어라 !!! 교직원노조 결성과정에서 직위해제 당하시고 민주당사에서 긴 단식 투쟁후에 경찰서로 가신 나의 은사님과 평민당사에서 7일간 6일간 5일간 단식을 마치고 나온 내 친구들과 현호형을 생각하며 상대적으로 불성실했던 나를 반성하며 1989.6.13 사문일지 김용덕

봄

미치고 싶지 고름같은 일상 죽죽 찢어발기고 말처럼 뛰고 싶지 울고 싶지 호수같은 하늘 눈물 목련처럼 뚝뚝 떨구고 싶지..싶지.. 죽고 싶지 바다같은 벌판 살랑이는 바람 배터지게 마시고 싶지 그래서 죽고 싶지 죽어서 다시 살고 싶지 살아서 꽃씨처럼 날리고 싶지 방향없이 날리고 싶지 날려서 끝까지 가고 싶지..싶지.. 1991.4.22일 김용덕

들리지않아요

들리지않아요 그대 목소리 옛날 같이 낭랑하게 들리지않아요 이러다가 돌아갈 것 같아요 당신을 따라 내 마음 초개같이 버리고 따라온 바람같은 시절이 이제는 부질없는 후회로만 남을 것 같아요 당신을 따라 어렵던 계절 따라 견디었지요 그 시절 쌓이는 슬픔마다 당신도 함께 걷고 있다는 위로 꾹꾹 접어 두고 속으로만 울었지요 1993년 8월 어느날 김용덕

잠 안오는 밤2

잠 안오는 밤 밤 새 눈이 내린다 내 마음 어지러운 혼돈의 숲에도 눈이 뿌린다 나이가 들면서 마음이 자주 불안해진다 하나를 더먹어 내 나이 이제 스물 넷 오십의 반 고개를 올라서는데 아직도 나는 바람처럼 구르기만 할 뿐 나는 미치게 울고 싶다 1993년 1월 17일 저녁 김용덕

잠 안오는 밤1

잠이 안와 뜬 눈으로 새우는 밤에는 어둠 새로 온갖 생각이 머리를 들쑤신다 작년 여름 징한 세상 폐암으로 돌아가신 이른 둘 아버지가 먼저 나타나 그렁그렁한 눈으로 바라만 보시다 마지못해 가시고 가끔씩 수술자리가 아프시다던 예순의 어머니가 오셔서 30년 괘기 독으로 오른 붉은 손으로 나를 붙잡고 우신다 야야 내등이 이리 굽어도 니만 있으면 나는 즐거운 기라 카랑카랑한 눈으로 누이들도 나타나 아버지는 니 때문에 죽은기라 감기가 뜬금없이 암이 되나 니놈만 아니면 한 십년은 더 사셨을거다 핏대를 올리다 올리다 젯 풀에 꺾여 사라진다 술기운으로 잠 안오는 그런 날이면 잠 안오는 밤보다 푸석하게 부어오른 아버지 얼굴이 더 무섭고 그런 날이면, 정말이지 구들장 밑으로 들어가 벌레라도 되고 싶다. 김용덕

1989년 4월 24일 편지글

경미 누나 보시오 새벽 2시. 뜨거운 액체. 코피란 놈이 날 잠에서 깨워 버렸읍니다. 정말로 따분하고 신경질 나는 주말이었읍니다. 자다가 깨다가 책 좀 읽다가 또 자다가, 정말로 제대로 된 주말이 아니었읍니다. 아침 굶고 점심엔 라면 저녁엔 제대로 먹는다고 마른 반찬 1000원, 오이 3개 500원, 감자 1000원에 사서 해 먹었는데 점점 게을러지기 시작합니다. 자취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게으름이란 곧 영양실조를 의미하는데, 스스로 알아서 챙겨 먹어야 하는데, 쌀도 떨어지고 연탄도 2장 남았는데, 비 오고 추운 날 땔려고 남겨 두었는데, 돈도 1710원 남았는데, 주머니 비니까 그냥 불안해지니까. 누나 그냥 불안하다. 바람만 조금 세게 불면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 어딘가에서부터 쌓아올라간 벽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어쩌면 쌓아 올리지조차 않았을 벽들이, 기반부터 빠져버림을.... 누나 참으로 우수운 얘기고 참을 수 없는 이야기인것 같아요. 누군가의 삶의 가치와 가치관을 위해서 주위의 누군가의 삶이 파괴되고 힘들어야 한다는 사실. 정말로 참기 힘든 일입니다. 2달에서 10일 조금 빠지는 생활 속에서 써클에 정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내가 떠난 후에 써클 문학반 이야기 모음 집에 선배 하나가 써 놓은 글이 그래도 정이 들었음을.... 우리가 매일 매일의 일을 정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과의 관계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 계속 나가기로 했읍니다. 학교 일로 성남 누이 집에 들렀는데 그날 술 취하신 아버지가 내 생활이 궁금해서 전화를 했답니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 결심이 와르르 무너져 내립니다. 자식 새끼 500원짜리 밥 먹는다는 사실에, 자식 새끼 500원짜리 밥을 위해서 5시 30분까지 노동판에서 일하신다는 아버지. 자식 새끼의 보답없는 삶을 위해서 그날도 야근하신다는 어머니. 누나 내가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버리고 말았읍니다. 아무런 소득도 없는...

노을

지는 노을이 소리 없이 붉다 사라져 가는 모든 것들 울며 발을 동동 구르며 마지막 집착의 한숨을 토한다 아! 나는 저물어 가는 길목 어디쯤에서 이렇게 긴 한숨을 짓는 것일까 1993년 9월 1일 김용덕 덧붙이는 말 이 시는 용덕이가 세상을 떠나기 4일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시입니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이 시를 볼 때마다 그가 정말로 지는 노을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며 긴 한숨을 짓고 있는 것처럼 눈 앞에 보이는 듯 합니다.

떠나는 너야 어떨까마는

떠나는 너야 어떨까마는 살아있는 사람들은 떠나는 너로 인해 잊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가진다 너를 데리고 벽제로 가는 아침 안개가 끼고 인연 없는 몇몇의 사람들 무심코 너를 볼 뿐이나 지나간 10년 동안의 세월 너와 함께 했던 사람들 후회와 그리움으로 뚫리는 가슴을 어찌 채우란 말이냐 얻을 것 없는 세상에 태어나 네가 남기는 것은 흘러가는 강물에 버려지는 한 줌 재와 너를 아는 사람들 가슴속에 쓸쓸한 기억 뿐 아름다운 기억은 아름다워서 더욱 가슴 아프고 살아있는 사람들 가슴속에 살아있는 기억들 잊는다고 잊혀질까마는 마지막 가는 길에 모두 다 가져가거라 너를 데리고 벽제로 가는 마지막 아침 아쉬운 기억만이 쓸쓸하게 바람처럼 가고 있다 김용덕

훈련소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허약한 소나무 몇이 콜록거리며 쓰러졌고 연병장 가득 쌓인 눈을 치우느라 우리들의 전투화는 아침부터 젖어 있었다 모두들 양지로 떨어지는 풋풋한 햇살이 그리웠다 4발짜리 고문관을 위하여 그들은 전투화와 개머리판을 아끼지 않았고 팽팽한 사선 위로 튀어 오르는 타켓트가 누구인지를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냥 필요에 의한 뇌세포의 반작용이었을 뿐 그들은 나의 가슴에 166의 숫자를 달아 주었고 나는 166번 훈련병 이외의 아무것도 될 수가 없었다 김용덕

그리움

그대여 나는 질퍽한 수렁 속에 한쪽 발을 담그고 그대를 기다립니다 나의 발은 덫에 걸려 피 터지고 속살 보이는데 그대여 그대는 저기 먼 산 바깥에 그냥 혼자 소나무로 서서 바라만 보십니까 어느 날은 갑자기 바람에 실려 온 그대의 자궁 속 엄마 같은 체취가 어지러운 나를 더 어지럽게 합니다 그대여 그대 향기에 나의 가슴은 타다 못해 이렇게 그리움에 멍이 드는데 그대는 보이지 않는 바람으로만 오시렵니까 어느 날은 뿌연 연기에 가려 그대가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 날 나는 빠지지 않는 수렁 속에서 갈대처럼 목 만이 길쭉하게 자라 허전한 가슴 빈속으로만 우는데 그대는 그리움의 언덕 저편에서 무엇을 하십니까 김용덕

진달래

자유라도 잃었느냐 남들은 다 지천으로 웃고 있는데 무슨 그리움이 그리도 커 선지 같은 붉은 피 뚝뚝 토하느냐 누가 네 목을 조르더냐 왜 그리도 갈가리 찢어지는 숨 막힘의 소리로 헉헉거리며 등성이마다 아우성이냐 하늘은 푸르지 않느냐 네 귓볼을 스치는 바람의 냄새를 맡지 못하느냐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향긋한데 왜, 걱정으로 밤새 뒤척여 눈물 같은 버짐 피웠느냐 김용덕

떠들지 마라, 젊은 예수쟁이야

떠들지 마라, 젊은 예수쟁이야 어두운 골방 상처 하나 없는 고운 손으로 세상을 사랑한다 말하지 마라 젊은 예수쟁이야 떠들지 마라 배고픈 사람들을 위하여 한 끼를 굶어 본 적 없는 네 잘난 입속에 예수를 가두고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라 세상은 온통 고삐 풀린 바람뿐인데 주린 창자를 부여잡고 하루에도 열댓 번씩 바람 속에 까무러졌다 울먹이며 일어나는 어린 양들의 고달픈 일상이 젊은 예수쟁이야 보이지 않느냐 떠들지 마라, 젊은 예수쟁이야 김용덕

아들아 보아라

그리운 아들아 보아라 여름이 보이는 것 같구나 공장 갔다 돌아오는 까만 밤길에 개구리는 무슨 전쟁같이 우는구나 잘 지내고 있느냐 네 소식이 하도 그리워 까막눈인 나가 이렇게 연필을 들었다 한식날 네 아버지 무덤가에 머리카락 같은 풀들을 솎아내고는 떠나면서 못내 아쉬워하던 네 눈을 기억한다 아들아 보고 싶구나 내 니가 집으로 안 내려오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야 간다마는 그래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내려오거라 내 니가 어무이 보고 올라가면 싱숭생숭 아무것도 못한다는 거 다 안다 하지만 니 아버지 가신 뒤로 나는 니 하나만 하늘같이 바라보고 사는기라 그래 내 등이 이리 굽어도 나는 즐거운기라 이제 걱정 팍 집어던지라 해도 니는 아직도 내 옷고름 옆에서 코 흘리고 있는기라 김용덕

귀향

살아온 무게만큼 흔들리는 것일까 설이라 고향으로 돌아오는 밤 버스 사람들은 저마다 몇 분지 몇의 희망을 안고 돌아가는 걸까 젊은 몇몇은 한해 일들을 무슨 훈장처럼 떠벌여 대고 밤 버스는 자꾸 자꾸 빙판길에 흔들리는데 나는 얼마 만큼의 희망을 안고 돌아가는 것일까 창 밖 어두움 속으로 쌀밥 같은 송이 눈은 날리는데 김용덕

아, 나의 시는

그리워져 오랜만에 찾아든 친구 야학을 마치고 돌아와 피곤한 몸으로 누운 친구의 허름한 등을 보면 아, 나는 시를 쓸 자격이 있는가 나의 시는 시가 될 수 있는가 친구는 그래도 먹고 살만해 대학에 다니는 선생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들을 말하고 배움에 목마른 월수 6만원 미싱일에 대해서 말하고 그래서 눈물 나는 수업 시간과 슬퍼서 버릴 수 없는 야학의 까만 눈들을 말하는데 아, 나의 시는 시가 될 수 있는가 무얼 찾는 치열함도 땀도 없는 나의 시는 김용덕

무엇이 우리를 이리 만드는 것일까?

선선한 여름 바람이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아버지의 등 뒤로 붉은 노을이 진지 오래고 아버지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저리도 골똘히 하시는 걸까? 죽어서까지 어긋나기만 하는 스물 둘 막내아들의 불안전한 장래를 생각하셨을까? 아니면 시집마저 불우한 탄촌으로 간 막내 누이를 생각하시는 걸까? 아니면 이북 어디메쯤에서 살고 있을지 죽었을지 모르는 지금은 오십 나이는 됐을 북에 두고 온 아들들에 대해서 일까? 나는 병실 창가에 서서 부어오른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만 보았다 어머니, 아버지는 살리고 봐야지요 어머니도 울고 나도 울었다 산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서러움과 울음의 연속일까 나는 그 날 저녁 내내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어머니의 말을 아침이 오도록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이 우리를 이리 만드는 것일까? 고달프게만 살아온 저물어가는 일흔 한 살 아버지의 생과 육십 평생 어머니의 생을 생각했다 무엇이 우리를 이리 만드는 것일까? 김용덕

벽

어제 죽지 못한 서러움으로 다시 사는 하루살이처럼 어제 밤 빠알간 빛에 반 쯤은 타버린 날개를 편다 어제 밤 불을 향해 가던 나의 날개가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고 나는 쓰러지고 날개는 찢어졌다 찢어진 날개를 가느다란 두 팔에 얹고 다리를 들고 일어선다 창 너머엔 불이 있고 나는 또 날개를 편다 (삶이란, 수 없이 다가오는 벽돌을 깨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깨고, 나아가고 또 깨고, 그러면서 가는 것이다.) 김용덕

아침을 굶은 날

먹을 것 떨어져 아침을 굶고 자리에 힘없이 띵한 머리로 누운 날은 집으로 가고 싶다 그냥 그대로 스르르 눈을 감고 누으면 고향의 그 푸르른 파도와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나를 감싸고 아, 나는 어느새 고향으로 가는 차에서 내려 그리도 가고 싶었던 시골집 눈에 익은 신작로와 그 옆으로 펼쳐진 모래사장과 짠 바람과 마음 좋은 고향 아저씨를 만난다 골목을 꺽어 들어 무너진 담벼락에 너울진 호박 넝쿨과 문턱을 넘으면 아, 어머니 그리운 나의 어머니 성글한 눈과 덥썩 안아 오는 포근한 품속 먹을 것 떨어져 아침을 굶은 날은 그냥 그대로 집으로 가고 싶다 김용덕

수학 시간

수학 시간이었지 창밖으로 목련이 지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봄이 꽉 찬 어느 날이었어 문제만 써 놓고 칠판만 멀뚱하게 바라보는 내게 선생은 이렇게 말했어 그만한 문제도 못 풀면 네 놈이 할 일은 배나 타고 공사판에서 벽돌이나 나르는 단순노동자 밖에 없어 아이들이 웃었고 난 얼굴이 벌게진 채로 자리로 돌아오고 말았어 그때 넌 왜 말하지 못했니 우리 아버지의 삶이 뭐가 어떠냐고 난 커서 아버지처럼 배를 탈 거라고 아버지의 삶을 비참하게 만든 건 당신이지 아버지가 아니라고 그 후론 난 교단에 올라 선 수학선생님의 통통한 배를 보면 사장님네의 배를 생각했지 그는 교단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우리 아비들의 삶 위에 올라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용덕